Today's Word

분별하는 나를 놓는 공부

2026 . 09 . 07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생겨나고 변하며 사라집니다. 사람과 물건, 생각과 감정도 늘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 변화만 따라가서는 만물의 본래 성품을 온전히 알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생멸하는 모습에 붙잡히지 않을 때 비로소 생겨남과 사라짐으로 나눌 수 없는 실상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 이치를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가 진리를 안다’고 붙잡는 순간, 아는 나와 알려지는 대상이 다시 둘로 갈라집니다. 나와 대상이 따로 있다는 분별로 바라보면 현상에 드러난 차이만 보게 됩니다. 차별 없는 평등상을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 주체도 고정된 실체로 붙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 말은 아무것도 보거나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관찰은 일어나되 ‘내가 관찰한다’는 생각을 앞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은 분명하지만 그 알아차림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 상태, 스님은 이를 무심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마음을 억지로 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나와 남, 옳고 그름, 얻음과 잃음을 갈라 세우는 힘을 내려놓는 공부입니다.

학교를 떠올려 보십시오. 학교와 교수, 학생과 책은 공부를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건물이나 직함, 책의 두께 자체가 공부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 모든 조건을 통해 실제로 배우고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비유처럼 수행의 형식과 설명은 길을 가리키는 도구입니다. 손가락을 붙잡는 데 머물지 말고, 그것이 가리키는 이치를 직접 살펴야 합니다.

‘불성’이나 ‘깨달음’이라는 말도 어떤 물건처럼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다시 대상이 됩니다. 개념은 방향을 알려 주지만 그 개념 자체가 진실은 아닙니다. 무생법인의 공부는 생기고 사라지는 현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또 하나의 대상으로 찾는 일이 아니라, 대상을 찾고 붙드는 분별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 가르침은 어렵고 높은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의 작은 순간에서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보며 판단이 일어날 때, 판단의 내용만 따라가지 말고 ‘내가 저 사람을 이렇게 보고 있다’는 자리도 함께 살펴보십시오. 그 나를 또 비난하지 말고, 분별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조용히 알아차려 보십시오.

대상을 보는 마음과 ‘보는 나’까지 함께 놓아 보십시오.

모든 현상은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 너머의 이치를 알려면 대상에 대한 분별뿐 아니라 ‘내가 보고 있다’는 의식도 붙잡지 않아야 합니다. 관찰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 관찰하는 나를 고정하지 않는 공부입니다. 오늘 판단이 일어나는 순간, 대상과 판단하는 나를 함께 조용히 살펴보십시오.

번역 제보 / Report translation
분별하는 나를 놓는 공부
분별하는 나를 놓는 공부 카툰
우리는 늘 나와 대상을 나누어 봅니다.
‘내가 안다’는 생각도 또 하나의 분별입니다.
책과 말은 이치를 가리키는 도구입니다.
관찰하되 관찰하는 나를 붙잡지 마십시오.
분별이 쉬면 생멸 없는 이치가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