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Word

불성은 늘지도 줄지도 않습니다

2026 . 07 . 23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마음이 자주 흔들리면 자신에게 깨달음의 가능성이 모자란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수행 중에 특별한 체험을 하거나 어려운 뜻을 조금 이해하면, 전보다 더 큰 성품을 새로 얻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없던 성품을 만들어 붙이는 일이 아닙니다. 본래 그러한 줄 알지 못하던 데서 벗어나 분명히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이 말을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기준음이 늘 한결같아도 악기를 조율하지 않으면 연주는 어긋납니다. 불성이 줄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게으름의 핑계가 아니라, 누구도 처음부터 버려진 존재가 아니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닦으라는 격려입니다.

조용한 음악 연습실을 떠올려 보십시오. 초보 연주자가 첼로의 음을 놓쳤다고 해서 기준음이 작아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연주가 정확해졌다고 기준음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기준음은 그대로 있고, 연주자는 귀를 열어 그 음을 듣고 줄을 맞춥니다. 잘못 맞추면 다시 듣고, 조금 맞았다고 자랑하지 않으며, 온몸의 긴장을 풀고 거듭 조율합니다.

수행도 이와 같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가려 본래 성품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에도 깨달음의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행을 통해 마음이 맑아져도 새로운 자아나 영혼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가리던 집착을 놓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진실을 분명히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모자란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동시에 “나는 본래 완전하니 더 닦을 필요가 없다”고 멈추지도 마십시오. 열등감은 본래 가능성을 깎아내리고, 교만은 아직 남은 흐림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두 극단을 놓고 오늘의 말과 행동을 차분히 조율해야 합니다.

불성은 내가 소유한 물건이나 변하지 않는 개인 영혼을 뜻하지 않습니다. “내 것”으로 붙잡을 실체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나 수행과 인연 속에서 드러나는 깨달음의 가능성을 가리킵니다. 내가 누구보다 낫다는 증표도, 누구보다 못하다는 판결도 아닙니다. 알아차림이 깊어질수록 비교는 줄고 자비로운 행동은 늘어납니다.

오늘 한 번 더 마음의 기준음을 들으십시오. 화가 올라올 때 말하기 전에 멈추고, 욕심이 앞설 때 곁의 사람을 돌아보며, 모르는 것은 정직하게 다시 배우십시오. 본래 성품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바르게 조율해 가는 일입니다.

불성은 늘고 줄어드는 소유물이 아니니, 포기하거나 멈추지 말고 오늘의 마음을 닦으십시오.

불성은 중생이라 해서 줄지 않고, 여래라 해서 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안의 영혼이나 소유물이 아니라 수행과 인연 속에서 드러나는 깨달음의 가능성입니다. 자신을 포기하지도, 이미 다 이루었다고 멈추지도 말고 오늘 할 수 있는 수행을 이어 가십시오.

번역 제보 / Report translation
불성은 늘지도 줄지도 않습니다
불성은 늘지도 줄지도 않습니다 카툰
알아차리지 못해도 불성은 줄지 않습니다.
기준음은 서툰 연주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수행은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듣고 살피며 오늘의 마음을 바로잡습니다.
성품을 소유물로 붙잡지 말고, 계속 닦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