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누구도 버리지 않습니다
허공은 어느 한곳에만 머물지 않고 모든 것을 품습니다. 깨끗한 것만 골라 담고 불편한 것은 밀어내지 않습니다. 여래의 지혜가 평등하다는 말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 드러난 능력과 허물만으로 어떤 존재는 귀하고 어떤 존재는 쓸모없다고 나누지 않습니다.
평등은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일이 아닙니다. 마른 땅에는 물이 필요하고, 약한 줄기에는 받침이 필요하며, 이미 튼튼히 선 나무에는 스스로 자랄 여유가 필요합니다. 같은 양과 같은 방법을 고집하기보다,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는 자비로운 방편이 지혜의 움직임입니다.
큰 나무가 여러 가지와 잎이 자랄 자리를 내어 주듯, 지혜는 선한 마음과 행동이 자랄 조건을 마련합니다. 잎이 먼저 나는 나무가 있고, 줄기를 단단히 세우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 나무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때를 실패와 성공으로 성급히 가르지 않을 때 우리는 성장을 더 정확히 도울 수 있습니다.
바다가 여러 흐름을 받아들이듯 넓게 품는 마음에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인다는 것은 잘못을 그대로 두거나 해로운 행동을 모른 척하는 일이 아닙니다. 불과 바람의 비유가 일깨우듯,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키우는 행동은 분명히 멈추고 선한 마음이 머물 조건은 정성껏 지켜야 합니다.
본래 지혜가 갖추어져 있다는 말도 “나는 이미 완전하다”는 주장이나 변하지 않는 개인적 영혼을 세우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몸과 마음은 인연 따라 끊임없이 변합니다. 다만 어느 존재도 알아차림과 자비의 가능성에서 영원히 제외되지 않으며, 수행과 바른 인연을 통해 그 가능성이 삶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변화가 더디면 쉽게 단정합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라고 선을 긋기도 합니다. 자신에게도 “나는 이것밖에 안 돼”라는 이름표를 붙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돌봄은 억지로 가지를 잡아당겨 빨리 키우지 않습니다. 햇빛과 물, 받침과 기다림 가운데 지금 필요한 한 가지를 살핍니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짐을 대신 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로운 행동에는 경계를 세우되, 그 사람 전체를 허물과 같다고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가까이 돕고, 때로는 거리를 두며, 때로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자비로운 방편이 됩니다.
지혜는 거창한 설명보다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오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한 번 더 살펴보고, 그를 내 기준에 맞추려는 마음을 내려놓아 보십시오. 누구도 버리지 않으면서도 해로운 것은 분명히 멈추고, 선한 가능성이 자랄 조건 하나를 보태는 것이 오늘의 수행입니다.
지혜는 모든 존재를 같은 모습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큰 나무가 서로 다른 가지와 잎이 자랄 자리를 내어 주듯, 각자의 때와 형편에 맞는 선한 조건을 살핍니다. 해로운 행동에는 경계를 세우되 누구도 그 허물과 같다고 단정하지 않는 마음이 자비로운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