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Word

법성을 본다는 것은 한 마음의 자유를 보는 일입니다

2026 . 06 . 06

법성을 본다는 말은 어떤 특별한 물건을 눈으로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성, 불성, 법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더라도 그것을 신비한 대상처럼 찾기 시작하면 이미 본래 뜻에서 멀어집니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견성은 바깥의 대상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모든 대상과 현상이 일어나는 근원을 바로 아는 일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온갖 경계는 한 마음의 작용이며 투영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 선과 악, 옳고 그름도 마음을 떠나 따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면 수행자는 경계에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좋아할 것도, 미워할 것도, 얻었다고 붙잡을 것도, 잃었다고 무너질 것도 줄어듭니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마니주에 비유했습니다. 마니주는 붉은색을 만나면 붉게 비추고, 푸른색을 만나면 푸르게 비춥니다. 그러나 붉음에 집착하지도 않고 푸름에 묶이지도 않습니다. 오는 대로 비추고 가는 대로 놓아줄 뿐입니다.

법성 또한 이와 같습니다. 꽃도 마음이고, 바람도 마음이며, 괴로움도 마음이고, 기쁨도 마음입니다. 만 가지 다른 현상이 본래 한 마음의 드러남임을 알면 칭찬과 비난, 성공과 실패에도 걸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열반의 세계입니다. 열반은 죽어서 가는 어떤 곳이 아니라, 분별과 집착이 사라진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 드러나는 자유입니다. 법성을 본다는 것은 특별한 세계를 얻는 일이 아니라, 본래부터 자유롭던 자기 마음을 바로 보는 일입니다.

오는 경계를 비추되 붙잡지 않을 때 본래 자유로운 마음이 드러납니다.

법성을 본다는 것은 특별한 대상을 얻는 일이 아닙니다. 만 가지 경계가 한 마음의 드러남임을 알고, 오는 대로 비추되 붙잡지 않을 때 본래 자유로운 마음이 드러납니다.

원문 · T0_source · AI 사전검수 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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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을 본다는 것은 한 마음의 자유를 보는 일입니다
법성을 본다는 것은 한 마음의 자유를 보는 일입니다 카툰
법성은 물건처럼 찾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경계는 한 마음의 드러남입니다.
마니주는 색에 물들지 않습니다.
칭찬과 비난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본래 자유로운 마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