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은 중도에서 바로 봅니다
불교 공부에서 불성을 말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그것을 고정된 무엇으로 붙잡는 일입니다. 불성을 영원히 따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처럼 생각하면, 불교가 말하는 무아와 연기의 뜻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불성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지워 버리면, 수행자가 믿고 걸어갈 깨달음의 방향도 흐려집니다.
그래서 중도의 눈이 필요합니다. 중도는 단순히 양쪽의 중간을 고르는 태도가 아닙니다. 있음에도 머물지 않고 없음에도 머물지 않으며, 생겨남과 사라짐, 좋고 나쁨의 분별에 휩쓸리지 않는 지혜입니다. 마음이 한쪽 끝에 매달릴수록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어렵고, 깨달음의 길도 흐려집니다.
강한 비가 내린 뒤 물길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쪽으로 물이 몰리면 바닥이 패이고, 다른 한쪽이 막히면 고인 물이 썩습니다. 그러나 물길이 바르게 열리면 물은 소리 없이 제 흐름을 찾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있다”는 생각에만 매달려도 흔들리고, “없다”는 생각에만 매달려도 막힙니다.
불성은 말로 붙잡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이치를 따라 직접 확인해야 하는 공부입니다. 그 법은 모든 현상이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가운데서도, 집착하지 않을 때 드러나는 바른 길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불성을 말할 때에는 확신과 조심스러움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수행할 힘은 잃지 않되, 그것을 고정된 자아로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어려운 교리를 이기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좋다와 싫다, 있다와 없다, 옳다와 그르다의 끝으로 달려갈 때 잠시 멈추는 일입니다. 멈추어 보면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음이 보입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중도로 돌아오는 순간, 불성 공부는 멀리 있는 말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서 시작됩니다.
불성은 고정된 무엇으로 붙잡을 대상이 아니며, 아무것도 없다고 지워 버릴 대상도 아닙니다. 있음과 없음의 양끝에 머물지 않을 때, 중도의 지혜가 마음을 바르게 비춥니다. 오늘은 한쪽으로 기운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중도로 돌아오는 공부를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