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내는 수행에서 저절로 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두면, 나중에 다시 보더라도 어떤 공부를 했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뜻을 살피며 정리하는 일이 공부를 이어 가는 바탕이 됩니다. 이제 다음 장으로 넘어가 무념의 가르침과 마음의 작용을 조금 더 살펴봅니다.
선종에서는 본래 능가경을 주요 경전으로 삼았으나, 오조 홍인 스님 이후에는 금강경을 중심 경전으로 내세우게 됩니다. 금강경의 핵심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입니다. 나무꾼이었던 육조 혜능 스님이 나무를 팔던 자리에서 이 경문을 듣고 곧바로 핵심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금강경의 가르침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대중성과 보편성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가르침은 수행의 자리와 깨달음의 자리에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합니다. 깨달은 뒤에는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이 저절로 납니다. ‘마음을 내라’와 ‘마음이 난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앞의 말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수행하라는 뜻이고, 뒤의 말은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분별과 집착, 오랫동안 익혀 온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좋은 것을 만나면 붙잡고, 싫은 것을 만나면 밀어냅니다. 칭찬에는 기뻐하고 비난에는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이켜 보고, 그런 마음에 끌려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머물지 않고, 소리와 향기와 맛과 촉감과 생각에도 머물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붙잡지 않고, ‘나’라는 생각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자비심과 보리심을 내는 것이 수행입니다.
분별과 애착과 집착이 남아 있으면 마음은 크게 흔들립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몹시 화가 나고, 어떤 대상에는 강한 애착이 생겨 놓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자리에서는 이런 마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돌아보고 다스리는 노력입니다. 화나 애착이 일어나는 대로 끌려가는 대신, 그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수행해야 합니다.
깨달음 이후에는 집착과 애착의 걸림을 벗어나,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이 저절로 작용합니다. ‘집착하지 말아야지’, ‘자비심을 내야지’, ‘화를 내지 말아야지’, ‘분별하지 말아야지’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킬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혜능 스님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구절에서 깨달았다는 것도, 어디에도 붙잡히지 않고 분별과 애착과 망상에 걸리지 않는 마음의 작용을 보았다는 뜻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무주, 곧 어디에도 머물지 않음을 수행합니다. 깨달은 뒤에는 그 무주가 삶이 됩니다. 애써 머물지 않으려는 단계를 지나, 어떤 생각에도 붙잡히지 않고 걸림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작용하되 어디에도 달라붙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 가르침은 며칠 더 이어서 공부할 내용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수행의 단계에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깨달음 이후의 마음이 저절로 걸림 없이 작용한다고 해서, 지금의 수행까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자리에서는 그 자연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충분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를 맡고 느낄 때마다 마음은 여러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 반응에 붙잡히지 않도록 돌아보고, 걸림을 넘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깨달은 뒤에는 자연스러워질 마음을, 지금은 수행으로 익혀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지 살펴보십시오. 좋아서 붙잡고 싶은 것, 싫어서 밀어내고 싶은 것, 칭찬이나 비난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화나 애착이 일어나면 곧바로 그 마음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을 돌이켜 보십시오.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거기에 계속 머물지 않도록 힘써 보십시오. 그 자리에서 자비심과 보리심을 내는 노력이 오늘의 수행입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가르침에는 수행의 자리와 깨달음의 자리가 있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분별과 집착의 습관이 남아 있으므로, 마음을 돌아보고 어디에도 붙잡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붙잡고 싫은 것을 밀어내며,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는 마음을 살피십시오. 보고 듣고 느끼는 것과 과거·현재·미래, ‘나’라는 생각에 머물지 않으면서 자비심과 보리심을 내는 것이 수행입니다.
깨달은 뒤에는 ‘집착하지 말아야지’ 하고 애쓰지 않아도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작용합니다. 그때는 무주가 삶이 됩니다. 그 자연스러움에 이르기 전에는, 지금 일어나는 마음을 돌아보며 수행을 이어 가야 합니다.
- 오늘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지 살펴봅니다.
- 좋은 것은 붙잡고 싫은 것은 밀어냅니다.
- 화나 애착이 일면 따라가기 전에 돌아봅니다.
- 쥔 손을 풀고 그 자리에 머물지 않으려 힘씁니다.
- 지금은 수행으로 마음을 차분히 익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