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의 수행과 구경각
좋고 싫음을 초월한 본래 청정한 마음을 살펴봅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외부의 경계를 만나고, 그에 따라 좋고 싫은 마음을 일으킵니다. 아름다운 보석이나 귀중한 보물을 보면 탐내는 마음이 생기고, 향기로운 사향을 맡으면 즐거움을 느낍니다. 반대로 더러운 물건이나 악취를 만나면 불쾌함과 거부감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육근이 육경을 만나는 순간 끊임없이 반응하며, 그 반응에 따라 탐욕과 성냄, 집착과 분별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마음의 작용이 중생을 번뇌와 괴로움에 얽매이게 합니다.
그렇다면 수행자는 이러한 경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어떻게 무심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먼저 좋고 싫음을 아는 것과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알고, 향기로운 것을 향기롭다고 느끼며, 악취를 불쾌하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각의 작용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반드시 소유하려 하거나, 싫은 것을 만나 무조건 밀어내려는 마음이 일어날 때 탐욕과 성냄이 생겨납니다.
따라서 무심의 수행은 감각을 없애거나 생각을 억지로 멈추는 데 있지 않습니다. 경계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되, 그 경계에 끌려가지 않는 데 있습니다.
좋은 것을 만나면 탐심이 일어나는지 살피고, 싫은 것을 만나면 거부감과 성냄이 일어나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그 마음을 억누르거나 없애려 하지 않고,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무상한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불취불사(不取不捨)의 수행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알아차림의 수행이 곧바로 구경무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탐욕과 성냄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것은 수행의 과정이며, 구경무심은 그 모든 번뇌의 근원인 근본무명까지 완전히 소멸한 경지입니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무념과 무심은 단순히 생각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망념과 집착에서 벗어나 본래 청정한 자성의 지혜가 드러나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에서 강조하는 궁극적인 깨달음은 일시적으로 번뇌가 쉬는 상태가 아니라, 근본무명까지 완전히 끊어진 구경의 깨달음입니다.
유념은 중생의 경계요, 구경무심은 부처의 경계입니다.
그러나 무심이라는 경지를 얻으려는 생각마저 남아 있다면 여전히 얻으려는 주체와 얻어야 할 대상이 존재합니다. 참된 무심은 무심이라는 생각에도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능소의 분별, 곧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을 나누는 분별이 끊어지고 일체 망념이 소멸하여 본래의 청정한 지혜가 원만하게 드러나는 것, 이것이 구경무심이며 구경각입니다.
결국 수행은 세상을 떠나거나 감각을 차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되, 그 어떤 경계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탐하지 않고, 싫은 것을 만나도 성내지 않으며, 좋고 나쁨을 분명히 알면서도 취하고 버리는 집착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경계를 만나도 마음이 머물지 않고, 싫은 경계를 만나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습니다. 취함도 버림도 없는 가운데 본래 청정한 마음의 지혜가 드러납니다.
이것이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무심 수행의 방향이며, 궁극적으로 구경무심과 구경각을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오늘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나면, 좋다고 느끼는 마음에 소유하려는 집착이 더해지는지 살펴보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만나면, 불쾌한 느낌에 밀어내려는 성냄이 더해지는지 관찰해 보십시오.
일어나는 마음을 억누르거나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마십시오.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임을 알아차리며, 붙잡지도 밀어내지도 않는 연습을 하십시오.
잠시 마음이 고요해졌다고 해서 구경무심에 이르렀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무심을 얻으려는 마음에도 머물지 않으며 수행을 이어가십시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싫은 것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각의 작용입니다. 수행은 그 감각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거기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성냄을 알아차리고 집착에 끌려가지 않는 일입니다.
좋은 것을 붙잡으려는 마음도, 싫은 것을 밀어내려는 마음도 억누르지 말고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으로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는 불취불사의 수행입니다.
이러한 알아차림은 수행의 과정입니다. 구경무심과 구경각은 근본무명까지 완전히 소멸하고, 얻으려는 주체와 얻어야 할 대상을 나누는 분별마저 끊어져 본래 청정한 지혜가 원만히 드러난 경지입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되 어느 경계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무심을 얻겠다는 생각에도 머물지 않는 길로 나아가십시오.
- 좋은 향엔 손이 먼저, 싫은 냄새엔 몸이 먼저 움직입니다.
- 좋고 싫음을 아는 건 자연스러운 감각입니다. 그 위에 붙잡고 밀어내는 마음이 더해지는지 살펴보세요.
- 감각을 막지 않고, 쥔 손과 굳은 어깨만 풀어 둡니다.
- 고요해졌다는 뿌듯함도 지나가게 둡니다. 잠깐의 고요는 구경무심이 아닙니다.
- 꽃도 퇴비도 같은 손길로. 일상의 알아차림은 근본무명까지 다한 구경각을 향해 걷는 길입니다.